기업사회공헌연구소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Research Institute

기업사회복지사 칼럼

​기업의 '사회적 워싱(Washing)'과 비영리단체의 딜레마: 진정성 있는 기업사회공헌을 향하여

촌객 2026. 5. 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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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후 적십자사 후원 사례로 본 기업의 사회적 워싱 행태. 그 속에서 비영리단체가 겪는 딜레마와 기업사회복지사의 진정성 있는 역할 전환을 짚어봅니다."




최근 기업들의 사회공헌(CSR)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기업이 사회적 논란이나 리스크를 일으킬 때마다 대규모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하거나 기부금을 쾌척하며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는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법이다. 위기 탈출용으로 급조된 사회공헌은 기업 이미지 개선의 훌륭한 '방패'가 되지만, 그 뒷맛은 씁쓸하다. 진정성이 결여된 '사회적 워싱(Social Washing)'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이후 행보다. 3천만 개가 넘는 고객 계정의 개인정보가 무단 유출되며 국민적 공분을 샀던 쿠팡은, 초기 대응 과정에서 피해 규모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과 함께 알맹이 없는 면피성 사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정작 피해 소비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나 근본적인 시스템 쇄신책 마련에는 지지부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한적십자사 등 대형 비영리단체와 손잡고 대대적인 사회공헌 및 후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민과 소비자가 입은 상처는 외면한 채, 공익성과 신뢰도가 높은 적십자사라는 브랜드를 빌려 '착한 기업'으로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전형적인 위기 대응식 사회공헌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그림자는 기업의 상대역을 맡고 있는 비영리단체(NPO)와 사회복지 현장에서 발견된다. 후원금 한 푼이 아쉽고, 당장 지원이 끊기면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하는 비영리단체들에게 거대 플랫폼 기업의 막대한 후원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달콤한 손길이다.
문제는 비영리단체가 자금을 지원하는 기업의 윤리적 리스크나 사회적 과오를 면밀히 검토하고 걸러낼 만한 여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업의 잘못을 뻔히 알고 대중의 시선이 따가운 것을 느끼면서도, "우리가 후원을 거절하면 당장 이 복지 서비스는 누가 책임지나"라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비영리단체는 기업의 부조리를 세탁해 주는 '도구'로 이용당한다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잘못한 기업의 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못하는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숨 막히는 평행선 위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존재가 바로 **'기업사회복지사'**다. 기업사회복지사는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마케터나 홍보맨이 아니다. 동시에 현실을 무시하고 비타협적인 도덕성만 요구하는 이상주의자여서도 안 된다. 기업과 비영리단체, 그리고 사회적 가치 사이에서 '건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성을 의심받는 시대에 기업사회복지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첫째, 사회공헌의 목적을 '위기 관리(Risk Management)'에서 '본질적 문제 해결'로 전환하도록 기업 내부를 설득해야 한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대형 복지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는 방식은 단기적인 처방일 뿐, 진정한 리스크 관리가 될 수 없다. 쿠팡처럼 개인정보 문제를 일으켰다면, 뜬금없는 외부 후원보다 정보보안 인프라 강화와 피해자 구제 등 본질적인 책임에 집중하도록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기업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이어야 한다.
둘째, 비영리단체를 단순한 '수혜자'나 '대행사'가 아닌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돈을 주었으니 기업의 과오를 덮는 방패막이가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구조는 파트너십이 아니라 동원이다. 비영리단체가 기업의 리스크에 휘말려 동반 실추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단체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의 지원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현장의 목소리를 기업의 의사결정권자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내부의 호루라기'가 되어야 한다. 생색내기식 사업이 현장에서 얼마나 외면받는지, 진정성 없는 후원이 비영리단체종사자들에게 어떤 무력감을 주는지 기업 리더십에 끊임없이 수치와 논리로 증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기업의 돈에 꼬리표가 없다고 하지만, 그 돈이 쓰이는 과정에는 반드시 '책임'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야 한다. 비영리단체의 절박함을 볼모로 삼아 기업의 허물을 덮는 시대는 지나갔다. 소비자와 대중은 이제 기업이 돈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쓰느냐를 매섭게 지켜보고 있다.
기업사회복지사들이 현장의 딜레마를 외면하지 않고 기업의 자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흘려보낼 때, 비로소 기업사회공헌은 '이미지 세탁기'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글. 기업사회공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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